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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페스트

알베르 카뮈 / 한수민 옮김

by 오쏠의 도전기 2020.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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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1부 ]]]

이곳에서 병이 든 사람은 매우 외롭다. 같은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전화기로, 혹은 카페에 앉아서 선화 증권과 어음 할인 에 대한 거래로 떠들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태양의 열기로 바싹 타들어가는 수백 개의 벽들 뒤에서 마치 올가미에 걸린 쥐처럼 죽어가는 사람을 한번 상상해보라. 비록 현대적인 곳일지라도 이토록 메마른 곳에 죽음이 그렇게 들이닥칠 때, 그것 때문에 겪는 불편함이 어떠할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마치 우리의 집이 자리 잡고 잇는 그 땅 자체가 그 내부에 쌓여 있던 고름을 제거하고, 지금까지 안에서 곪고있던 고름 덩어리와 혈농을 표면으로 내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건강한 사람의 짙은 피가 갑작스럽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것처럼, 여태껏 그렇게도 잠잠하다가 며칠 만에 발칵 뒤집힌 이 작은 도시의 아연실색한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라 !

도시의 사람들이 날마다 눈으로 목격하는 일상적인 광경의 분명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그 숫자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는 곧, 역사상 약 서른번에 걸친 대규모 페스트가 1억 명에 가까운 인명을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1억 명의 사망자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쟁 중에는 한 사람의 사망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거의 알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죽음이란 누군가가 그 사람이 죽는 것을 봤을 때에만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 오랜 역사 속에서 여기저기에 뿌려진 1억의 시신들을 상상 속의 한줄기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 2부 ]]]

하지만 일단 도시의 문들이 폐쇄되자, 서술자 자신을 포함해서 그들은 모두 같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으며, 그런 처지에 적응해야만 했다.

우리에게는 편지를 쓰는 가벼운 기쁨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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